지식의 가치는 상대적인가?
방금 든 생각인데 지식이라는 개념을 가치로 환산할 때도 시간적, 공간적으로 상대적인 측면이 있는 것 같다고 깨달았습니다.
사고 실험을 좀 해 봅시다. 지식은 많이 알고 있으면 가치화할 수 있다고 가정할 때 자신은 특정 수준의 지식을 학습해 자신의 가치를 끌어올리려는 시도를 했지만, 주변 사람들이 같은 분량의 지식을 전부 알고 있다고 하면 자신이 배운 것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치가 떨어지는 효과가 나타난다고 예측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의 지식의 양과 질의 분포에 따라 형성되는 가치의 상대성은 시대에 따라서도 많이 달라지고, 환경이나 지역에 따라서도 크게 좌우됩니다. 예를 들어 뉴턴은 미적분학을 집대성하여 위인의 반열에 올랐습니다. 더 고대로 가면 그리스의 수학자들이 노력해서 연구한 기하학이나 대수학들은 더욱 근본적이고 기초적인 내용들입니다. 그러나 21세기 대한민국의 고3 이과생들은 이들이 주장했던 이론을 전부 알고 있습니다. 이들의 시대에는 그러한 소재도 연구주제가 될 수 있었고, 진지하게 논의되고 권위를 가진 전문 지식으로서의 인정을 받았겠지만, 지금 미적분학의 기본정리는 이과생이면 다 배우는 내용일 뿐, 그 내용을 배웠다고 진지하게 차별성 있는 가치를 만들어내지 못합니다. 너도 나도 다 알고 있는 "상식의 수준"인 지식을 것을 장점이라고 어필하면 기업의 인사담당자는 폭소를 할 것입니다.
다만 "미적분이라는 지식이 현대에 들어 쓸모가 없어졌나?" 라고 생각하는 것은 어폐가 있는 해석입니다. 수포자 등의 "수학 과학 그딴거 시험 치면 다 까먹지, 게다가 실무에 써먹기나 하냐?" 라는 논리까지 가져오는 건 여기서는 차치하고서... 기본적으로 연구분야에서는 해당 지식들은 아주 기초가 되는 내용이라 절대적으로 무가치한 소재들은 아닙니다. 또한 대학 수학은 미적분학을 이해하지 못하면 다음 과목들인 선형대수학, 미분방정식 등등 내용을 이해하기 매우매우 어렵습니다. 따라서 가치로 직접적으로 환산되지는 않지만 가치로 인정되는 전문성 있는 지식 복합체(예를 들자면 석/박사 학위, 연구논문, 경력 등등..이란 개념으로 명명함.)들은 기본적인 요소들이 대단히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고, 이것들이 없으면 이룰 수 없고 존립할 수 없으니, 미적분학 지식을 배우는 것 역시 일종의 투자나 적금이라 비유할 수 있겠네요. 어쨌든 간접적으로는 도움이 될지언정 배워 두면 쓸모없어지는 일은 드뭅니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앞선 예시를 통해, 지식을 단순히 배운다는 것으로 미래에 가치로 돌아온다는 것을 확실히 보장할 수 없다는 걸 말하고자 합니다. 지식 그 자체로서도 때로는 가공이나 재생산, 시대나 환경 변화에 맞춰 수정해야 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지식을 배운다면 배우기만 하지 말고 배우면서 시대적 흐름을 읽고, 이 지식이 나중에 어떤 요소로 인해 어느 수준의 가치를 가지게 될 것이며, 사회에서 어느 정도의 비교우위가 있는지, 그 지식이 더 쓸모가 있어지는 업종은 무엇이 있을지... 이런 것들을 생각하는 게 훨씬 중요한 일이 될 겁니다.
(물론 말이 쉽지 국가 정책과 국제정세, 경제 흐름 등이 날이 바쁘게 급변하는 세상에서 이걸 전부 예측하고 계획을 짜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울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 사는 게 마음대로 안 된다 하지 않겠습니까... )
입시 얘기를 꺼내 봅시다. 현행 대입 체계는 수능+내신, (+학종 한정 생기부나 외부활동 등..) 에 올인을 합니다. 또한 수능의 5지선다 객관식 문항은 선지를 벗어나 사고를 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같은 주제를 보아도 수능에 익숙해진 사람은 상황을 해석하는 데 있어 사고의 폭이 좁고, 새로운 상황에서 자신이 보유한 지식들을 효율적으로 활용하지 못할 확률도 클 겁니다. 그래서 현행 교육제도에 있어 비판을 가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지식이 가지는 의의, 활용성이나 얼마나 가치가 있는지, 미래에는 어떻게 될지, 어떤 조건에서 가치가 커지고 작아지는지, 어떤 상황에서 어떤 지식과의 조합을 할 수 있다... 와 같은 내용을 알려주지도 않고 깨닫도록 유도하지도 않은 채 지식을 익히기를 지시하는 것이 한국 학교입니다.
또한 수능 준비 인강엔 소위 "스킬" 이라는 이름으로 대단히 정형화된 풀이법을 소개하는 내용이 많습니다. 특정 조건에서 지식을 활용하고 해석하는 일종의 알고리즘을 새겨 버리겠다는 건데, 물론 제한된 시간 내에 점수를 내야 하니 생긴 방법이라지만, 역효과는 없을까요? 과연 학생들이 입시를 끝내고도 12년간 내재된 이러한 사고를 떨치기 쉬울까요? 시험이 아닌 사안에도 이것을 무의식적으로 적용하려 하진 않을까요? 물론 아닌 학생들도 존재할 겁니다. 그러나 그러기는 쉽지는 않을 겁니다. 따라서, 주입식 교육, 입시위주 교육을 지적할 때 흔히 창의성, 개성 말살이나 학생들의 진로를 억압하는 등등의 이유를 들지만 제가 느끼기에는 이 문단의 사유도 비판적 사고(Critical thinking) 결여와 함께 큰 지분을 차지하는 폐해라고 여깁니다.
5천만이 모여 사는 하나의 사회, 특히 산업화 이후 확립된 현대사회 구조는 너무나도 복잡하고 입체적인 면모가 많습니다. 따라서 우리 역시 그에 상응하여 사회적 활동(개혁을 요구하는 사회운동가가 아니라 일반적인 경제활동, 사회적 결정 등을 칭함.)을 하기 위해 생각을 하거나 계획을 짤 때는 항상 1차원적이 아닌 여러가지 가능성을 두고 복잡하게 생각해보아야 한다고 느낍니다. 미분방정식에서 해석적, 즉 손이나 컴퓨터로 수식을 쓰고 계산해서 정확한 답이 딱 떨어지게 나오는 해는 극히 드뭅니다. 현실 세계에서도 이와 마찬가지로 답이 딱 떨어지는 사회적, 경제적, 자연과학적 현상은 거의 나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원인-결과와 같은 상황이 있다면 단순히 생각하지 말고 "원인이 여러 개이거나, 결과가 여러 개거나, 중간에 개입하는 요소는 없는가?" "상관관계를 인과관계라 하는 건 아닌가?" 라는 등, 입체적으로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느낍니다.
아... 주제가 계속 벗어나는 것 같고..더 생각하기에는 머리가 너무 꼬입니다. 저의 망상은 여기서 마칩니다.
미리 깨달으신 분들이나 사회생활 좀 해보셨다 하는 분들은 다 알고있는 너무나 당연한 소리, 또는 헛소리를 사족 붙여가며 할 소린가 싶을 수 있겠지만 저는 대학 1학년생이며 제가 모르는 상태에서 기반지식으로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이런 걸 추측해내는 걸 재미로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까놓고 보면 뇌피셜이니 현실에 맞지 않거나 틀릴 가능성 역시 염두해두고 있으니 재미로만 보아 주십시오.